앨범 정리하다
초등학교 입학전 유일하게 찍었던 돐사진
(고추가 보일락 말락~안보이쥬? 다행이다.ㅎㅎ)
몹시도 추웠던 어느해 겨울 광목이불을 덮고
4형제가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생계 유지에 이장 저장 새벽 일찍부터 나가시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할머니의 사랑과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냈지요.
그런데 밖에 출타하신 아버지가 들어 오시지 않는게 영 불안하기만 한
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만 감은체 바깥 소리에 귀동냥을 하고 있는데
어허라 디여~
배앵마는 가자 우울고 날은 저문데
낯설은 타관기일에 주막은 머얼다 ♬
멀리 골목 어귀를 들어오시며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세상이 모두 당신것인냥 거칠것이 없었습니다.
에효~
또 거 하게 한잔 하셨나보다.
노랫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나는 공포심에 잠을 자는척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옥수수 익어 가는 가을 벌판에
또다시 고향 생각 엉키는구나
배앵마야.............배앵마야..........
노래소리와 함께 점점 크게 나는 아버지의 발자국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창호지 발라 대나무 잎사귀로 예쁘게
장식한 방문 고리를 잡아 당기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무이 자요?
할머니는 아이고 또 한잔 했구나
술좀 작작 먹어라~
지 애미 고생하는것도 안보이냐?
그 말에 기분이 상하셨는지
네 이놈들!
아부지가 들어 오지도 않았는데 잠을자!
다 일어나!! 하며 고함을 치십니다.
못들은척 잠을 자는척 꿈쩍을 않으니
아버지는 우리가 덮고 있던 광목 이불을 훽 걷어 냅니다.
모두 기상!!
잠결에 놀란 막내는 울음을 터트리고
무서움에 벌벌 떨며 동생들과 저는
고구마 대통이 있는 쪽으로 몰려 섭니다.
너!
국민교육헌장 외워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과 밖으로.....
평상시에는 잘 되던 국민교육헌장이 오늘따라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차례대로 외워 보라 하시는데
동생들도 공포에 질렸는지 잘 안되는가 봅니다.
오호라! 요놈들 공부하라 했더니 애비말이 말같지 않았나 보구나?
아버지는 할아버지 영정사진곽에 걸려 있던 시누대로 만든 회초리를
꺼내 들더니 너부터 종아리 걷어~
철썩 철썩 회초리를 맞은 우리들은 차례대로 나동그라 집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니들 아부지 말이 말같지 않냐? 꺼~억
그람 본때를 보여주마.
전부다 옷 벗어 꺼~억
우리는 닳고 닳아 무릎쪽이 헤진 내복을 벗습니다.
저앞에 돼지막 앞에 가서 손들고 서!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돼지 우리 앞에 손을 들고 선 우리가
안돼 보였는지 돼지도 우리를 무시하는듯 꿀꿀 꽥꽥 소리를
지릅니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우리는 키드득 키드득 그새 서로를 바라보며
장난을 칩니다.
순간 우리를 환희 비추던 달님도 별님도 부끄러웠는지
옅은 구름사이로 붉어진 얼굴을 사알짝 숨깁니다.
나는 커서 절대로 술 안먹을거야...
절대로~절대로~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다짐을 지켜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겐 술 드시는 아버지가 무서운 존재로만 여겨졌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 아버지는 팔순 노인이 되어
시골 집앞 고추밭에서 축 쳐진 어깨 추스리며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계시리라.
그러구 보니 전화 드린지가 벌써 여러날이 되었네....
동네 어귀 마을 표지석과 울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