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라는게 막연한 공포의 대상으로만 느껴지던 까까머리 시절
어느 친구가 컴퓨터를 배울수 있는 학교로 진학한다 했을때
그 경외감과 부러움,질투는 상상 이상 이었습니다.
지금에 비하면 덩치는 거의 서랍장만한 이른바 386세대의 컴퓨터였죠.
그리고 한동안 컴퓨터라는걸 잊고 아니 단념하고 전 운전 면허를 택했습니다.
운전... 학교 다닐때 공부를 썩 잘했던건 아니지만 필기시험엔 어느정도 자신이 있어
집 사람의 극진한 배웅을 받으며 면허 시험장으로 향했는데 아뿔사~
전 그만 필기시험에서 부터 미역국을 먹구 말았습니다.
창피하더군요.
절치부심 머리 싸매며 운전면허 필기를 재수한끝에 당당히 1종 보통 면허증을 손에
넣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년의 시간이 흘러 어느날 컴퓨터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 손을 잡고
분당 서현역 로데오 거리 H*마트에 나갔는데
고만 고만한 또래의 아이들이 무언가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피웅 띠이웅~가만히 지켜보니 스타크래프트라는 겜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저도 그 게임을 한번 해보고 싶어 대충 설명을 듣고
시작하였는데... 잘 안되더군요. 손가락은 굳어 맘먹은대로 조정이 안되고
눈은 어지럽고 그런데 아이들은 그 고사리 손같은 가냘픈 손가락으로 너무도
컴퓨터 자판 여기저기를 능수능란하게 조정하는 겁니다.
저는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한동안 마음이 울적 하였습니다.
괜한 마음에 시대에 뒤쳐지는것 같고 아이들과의 소통도 안되는것 같고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저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말이 좋아 취직이지... 늦깎이 나이 마흔에 주임이란 직책을 받고 첫 출근 하던날
눈은 왜 그리도 많이 오던지...
눈인지 눈물인지 모를 회한과 설음으로 참 많은 시간을 번민 하였습니다.
사무실에서는 그때만 해도 주요 서류가 필기로 이루어지고 총무과에서만 유일하게
컴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구형 텔레비만한 커다란 모니터에 본체 또한 한자리를 차지 하고도 남을 만큼
컸습니다.
그래도 저 컴만 만질수 있다면...
부러움의 시간이 흐르고 회사의 시스템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탈로 대 변혁이
시작 되었습니다.
전에는 배우고 싶어도 엄두가 안나 겁부터 났던 컴퓨터가 어떻게 끄고 켜는지도 모를
그 컴퓨터가 제게도 지급이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못하면 어쩌면 직장에서 밀려날수도 있겠다는 위기 의식속에
조건 반사적으로 저는 컴을 배우기 시작 하였습니다.
퇴근후 정리할 서류를 집에 가지고 들어와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귀찮아 하는 아이들을
용돈 몇푼으로 매수 하여 끄고 켜는법, 인터넷 접속하는법 그리고
서류작성에서 기안서 정리등등 밤이 깊은줄 모르고 매달리니 이제 회사에서 적어도
컴 못해서 쫒겨나지는 않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컴을 썩 잘 다룬다고는 할수 없지만 웬만큼 할수 있다보니
이카페 저카페 운영도 맡게 되었고 퇴근후 이것저것 글도 올리고 반응도 살피며
취미 아닌 취미 생활의 일부가 된듯한데...
제 아내의 잔소리가 요즘 부쩍 늘었습니다.
왜 아니 그러겠는지요?
그러나 이제는 컴이 우리 학교 다닐때의 공책이나 필기도구처럼 없어서는 안될
필수 도구가 되었기에 앞으로도 생활의 일부일수 밖에 없는데
아내는 이해가 안되는가 봅니다.
이래저래 중년의 저는 고달픈 샐러리멘의 전형인듯 한데
이 넘의 문명의 이기 때문에 고달픈 나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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