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10~12일 2박 3일의 여정
6월10일 04시 성남 터미널 근처 찜방에서
전날 목포에서 올라오신 수당박상돈 작가와
전주에서 올라오신 고향달지킴이 김만수작가님을
Picup하여 설악산 소공원으로 향합니다.
이미 강릉에 사시는 김부오 작가님께서
날씨 상황에 대해 정보를 주신 바
오오츠크 기단 저기압의 영향으로 동풍이 들어오고
많게는 20~30밀리의 비가 예보되어 있어
환상의 운해를 마주 할 기회인 것 같습니다.
대피소에 물품이 품절되어
3인이3일 정도 머물 수 있는 준비로
햇반부터 식수 간단한 취사도구에
여벌의 옷과 침낭 카메라 장비를 포함하니
이번에도 배낭 무게는 28kg에 이릅니다.
설악동에 진입 전
하마평순두부 마을의 최옥순할매 집에서
부드러운 순두부 백반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소공원에 도착하니 아침 8시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배낭을 확인하고 결속한 후 간단히
양치를 하고 아침 8시30분 드디어 출발합니다.
비선대를 통과 양폭을 거쳐 희운각에서 하룻밤 묵고
목적지인 신선봉 까지는 약9.5km
가는동안 내내 부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판쵸우의를 입어 속에서는 땀이 차니 몸이 젖고
겉은 빗물로 젖어 몸도 옷도 다젖어
비맞은 장닭이 되어 가지만 주간산행이고
비로 인해 기온이 높지 않아 그리 힘든줄 모르고 올라갑니다.
작년 가을 오색에서 대청으로 오를 때도 계속 비를 맞고 가며
죽다 살아 날 것 같은 고통스런 산행이었는데
이후 병원에서 처방해준 갑상선 항진 억제 약을 꾸준히 복용해서인지
몸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 양폭지나 천당폭포에서 무너미 갈림길
된비알도 어렵지 않게 올랐습니다.
약 4시간여 산행 끝에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해서
배낭을 내리고 버너를 꺼내 점심 겸 저녁을
가져간 삼겹살을 구워 먹는 동안에도
비는 그칠 기세가 보이지 않고
도착한 날 일몰부터 담으려던 계획도 별 수 없이 단념해야 할 상황
밤 9시 대피소 직원의 잘자란 인사와 함께
산속은 깊은 적막감에 쌓입니다.
모르는 사람끼리 합숙이 그렇듯이
이내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슬며시 대피소 밖으로 나가보는데
빗줄기는 점점 드세지고
다시 들어와 억지 잠을 청하고 얼마나 잤을까
수당작가가 저를 흔들어 깨워 조용조용 배낭챙겨
취사장에서 떡국을 끓여 밤 참 같은 아침을 먹고
신선봉으로 향하는데 동이트고 날이 훤히 밝아졌어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하염없이 내립니다.
그렇게 올라 간 신선봉엔
공룡능선을 타고 도는 운해는 커녕
속초 앞바다가 손에 잡힐 듯 휑한 상황...
어느덧 낮이 다 가고 해가 지는 시간인데
계속되는 비...
공룡은 거대한 구름층에 꽁꽁 숨어 나타나질 않습니다.
모두의 장탄식으로 이틀째 밤이 깊어가고
가져간 2인용 간이 텐트에 얇은 매트를 깔고
침낭속에 고향달 작가와 몸을 맡기고 잠이 들었는데
두어시간 잤는지 등짝을 파고드는 차디찬 냉기에 잠을 깹니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별들이 초롱 거리는 맑은 하늘인데
운해는 다 어디로 갔는지...
앉았다 섰다 제자리 뛰기도 하며 추위를 달래보지만 냉기는
가시질 않습니다.
일정의 마지막 날도 이렇게 허무하게 가나...
그런데 일출 시간이 다돼서야
전혀 예상치 못 한 아득히 멀리 서북쪽의 백담사 계곡에
머물러 있던 운해가 희한하게도
동풍이 부는 바람의 방향을 거슬러
1275봉 쪽으로 스멀스멀 밀고 올라 옵니다.
이게 대체 어찌 된건가?
모두의 실망이 환희로 뒤바뀌는 순간
지난날 설악에 힘들게 올 때 마다
아무런 소득없이 쓸쓸히 하산해야 했던
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약 10년 가까이 매년 네다섯번은 설악을 오르고도
번번히 고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던 기억들
대체 사진이 무엇이길래...
하지만 주어진 여건하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밀려 들어 오던 운해는
어느덧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설악 공룡의 허리를 감싸고
금방이라도 용이 승천 할 것 같은
환상의 운무쇼가 펼쳐집니다.
내쇼날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보았던 바로 그!!!
그렇게 애타게 하던 설악 공룡의 운해 쇼는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면들을
하루에 다보여 주려는 듯 시시각각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장면들을 연출헤 냅니다.
한 컷
한 컷
또 10년 쯤은 기다려야 볼 것 같은 환상의 장면을
정성을 다해 카메라 앵글에 담습니다.
오늘은 메모리카드가 두쪽이 나더라도
너무 오랜 세월 기다려 온 이장면을
단 한컷도 남김 없이 담아 가야 합니다.
여러가지 핸디캡이 발목을 붙잡아도
결코 사진을 멈출 수 없는 건
熱精으로 대변되는 그 努力이
내 삶의 에너지원 이기 때문입니다.
외롭고 고단한 산행
그때마다 더욱 강한 인내와 스스로의 질책과 격려를하며
묵묵히 족적을 남기며 걸어온 길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솜사탕 처럼 희고 깨끗한 운해와
서쪽으로 넘어 간 뒤 여운처럼 남겨지는
노을빛의 장엄함 까지는 담지 못했지만
저녁8시 모든 촬영을 마치고 한 결 가뿐한 걸음으로 하산하여
곧바로 성남으로 차를몰아 두분 작가님과 함께
설렁탕 한그릇씩을 비우고 일정 마무리 하고
집에 들어오니 새벽3시 반이 넘었습니다.
대충 배낭을 정리해 놓고
묵직한 피로와 함께 사르르 눈감아 봅니다.
2박3일 행복했던 설악 공룡능선에서의
시간은 또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겨 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