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동피랑 마을
밤새우다시피 운전을 하고 잠깐 눈을 부치는둥 마는둥
아침 7시 첫배를 타고 소매물도에 들어갔다 해무가 많이 끼어
좋지 않는 일기때문에 기분이 썩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12시10분 배 시간에 맞춰 일찌감치 등대섬에 들어갔다 몇장의 사진만 간단히 찍고
끝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다시 산마루를 넘어 선착장까지 거의 다와버렸는데
잠깐이지만 하늘이 열립니다.
시간을 보니 배는 1시간은 있어야 올것같고 잠깐의 갈등끝에 오던길 되짚어
다시 망태봉으로 올라갑니다.
이미 한번 왕복을 했던터라 봄답지 않게 더운 날씨에 카메라 장비는 왜그리 무거운지
삼각대라도 빼놓고 올걸 하는 후회를 하면서 다시 오른 망태봉
이번이 몇번짼지 아시는지 하늘에서 잠시지만 빛을 내려 줍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다 보니 배 시간이 가까워져 옵니다.
부랴 부랴 선착장으로 gogo!!!
그렇게 두번을 왕복하니 저질체력에 온 몸은 땀투성이가 되었고
벗어제낀 재킷은 카메라 배낭에 집어넣어 반팔 차림이 되었는데
옷속에 겨우내 감춰져 있던 팔은 이글거리는 태양에 벌겋게 익어 갔습니다.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다 되었고 배에서 내리자마자
네비게이션에 동피랑 마을을 검색하니 1.4km 정도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밑에서 올려다본 동피랑 마을은 겉으로 보기엔 어느 소도시의 서민촌과
별반 달라 보지 않았습니다.
나즈막한 오름길을 올라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내리니
마을 입구에 동피랑 벽화마을이란 안내 표지판이 앙증맞게 나그네를 안내 합니다.
길따라 들어간 동피랑 마을은 판자촌의 그것과는 달리 너무 깨끗하였고
집집의 담벼락마다 고운 색으로 채색된 갖가지 그림들이 소매물도의 피로를 씻은듯
씻겨 줍니다. 마을의 유래야 애써 알려 하지 않아도
짐작만으로도 한때는 빈민촌,판자촌,술주정뱅이,등등 세상의 가장 낮은곳에 있는
민초들의 부정적인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고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마을이었겠지만
몇몇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과 주민들의 도움으로
좁은 골목길은 예전 모습 그대로지만 지금은 외지인의 통영방문시 빼놓지 않는 관광코스가 되었더군요.
찌그러지고 볼품없는 양은 솥, 끓는 물에 이리 채이고 저리 부디끼면서
되어가는 밥의 겉보리 알처럼 무자비하고도 잔혹스런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저항했던 그 시절 주민들의 눈물겨운 사연을 간접 체험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좁다란 골목 안쪽 어느 선술집에서 생의 희망을 잃어버린 주정뱅이의
교교한 목소리가 들려 올것 같은 기대는 너무나 깔끔히 단장된 벽화의 분위기앞에
나의 생각이 큰 착각 이었음을 알았습니다.
혼돈의 세월을 살면서 힘없고 무기력한 자신의 처지를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담긴
탁배기 한사발에 따라 마시며 세월을 삼키고, 설음을 타서 마시며
발 끝에 채이는 휴지 조각만큼이나 가엾던 자신의 생을 한탄했을 민초들의
흐느낌이 들려 올것만 같았습니다.
이쯤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며
또한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라는 질문을 수 없이 되뇌워 보았습니다.
상큼한 벽화 만큼이나 청량한 웃음과 기쁨이 동피랑 주민들에게 선사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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