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о★photostory

첫눈이 왔다구요

운광 2013. 11. 18. 19:22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 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 것 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 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 쓰고

     눈사람 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시 / 안도현 "겨울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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